내러티브 꿩잡이 2016/04/22 01:25 by 한멍멍

<혁오의 위잉위잉 이라니 너무 지나간 Pop음악이라 좀 수줍지만 그냥 오늘의 기분은 아무래도 위잉위잉> 


2013년 한해가 끝나갈 무렵, 혼자 제주도에 갔을 때였다.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고 충동적으로 떠나와 게스트하우스에 널부러져 우울해 하고 있는 나에게 
사람들은 용눈이오름에 가보라고 권했다. 반지의 제왕의 호빗촌이 펼쳐진다나 뭐라나.

그러나 용눈이오름의 문제는 대중 교통편이 변변치 않다는 것이였다.
게스트하우스 현지인 님의 조언대로 일단 다랑쉬오름에 갔다가 아끈다랑쉬오름에 갔다가 용눈이오름에 가겠다는 -차가 없으면 지나치게 빡쎈-호기로운 계획과 함께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일단 접근성이 좀 나은 다랑쉬오름에 닿았다. 

다랑쉬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당시 삶에 치이고 치여, 저질 체력과 저질 정신력으로 너덜거리던 나에게는 이노무 언덕조차 만만치가 않았고, 바람은 거칠게 나를 때리고 숨은 턱에 차 정상에 다 왔을 때쯤 목이 맥혀 주저 앉아 헤어졌던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고 말았다.

아이구, 그땐 그랬다. 

그리고는 다 자기 잘못이라며 내일 제주도로 날아 오겠다는 그의 말에 한참을 같이 엉엉 울다 보니 누워 있던 태양이 어느새 머리 위에 올라 나를 태우기 시작했고 근육맨 같은 10년 묵어 자크조차 고장난 촬영용 잠바를 입고 있던 나는 어느새 신나는 얼굴로 오름을 엉금엉금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체력은 이미 바닥에 닿아 있었고 버스 정류장이 생각보다 너무 멀어 히치 하이킹을 하기로 했는데 1차선 아스팔트 길에 서서 좀처럼 지나가지 않는 차들을 쳐다보고 섰는데 대부분 가족이나 커플 단위 여행객들의 렌트카 였던 지라 쉽게 나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너털거리며 계속 걷고 있는데 파란 1톤 트럭 한대가 터덜터덜 내앞으로 들어 와 섰다. 
차 안에는 얼굴에 '사람 좋음'이 라고 써있는 50대와 60대 아저씨 두 분이 타고 있었고 나는 그 차를 얻어 타고 근처에 버스를 탈수 있는 곳에 세워 달라고 이야기 했다.

운전을 하시는 50대 아저씨 쪽은 쉬지 않고 말을 해댔고, 무슨 선생님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이라고 불리우는 60대 아저씨는 그저 옆에 앉아 계속 사람 좋게 웃고만 계셨다.

-아 내가 버스정류장 데려다 줄건데, 근데 지금 잠깐 들릴 때가 있어. 거기만 들렸다가 바로 데려다 줄께.
-아... 넵.

차는 50대 아저씨의 집을 향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나는 손수 만든 나무 난로가 있는 그 아저씨네 집에 가서 평소 되게 싫어하는 맥심 커피를 얻어 먹으면서 수다를 떨게 되는데 아저씨들의 제주도 네이티브 스피킹은 거의 알아 들을수가 없고 이래저래 견딜수 없이 불편해 몸을 베베 꼬며 시계만 보았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조수석에 앉아있던 선생님은 그 아저씨의 집에서 자신의 트럭으로 갈아 탔고, 집 주인 아저씨는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내가 갈 예정이라고 했던 -지금은 지명이 기억이 나지 않는- A라는 지점까지 태워다 주겠다면서 차에 타라고 했다. 
슬슬 진짜 불편해 지기 시작한 나는 어찌할 다른 방법이 없어서 차에 타기는 했는데,

-그냥... 버스정류장에 세워주셔도 되는데...
-내 인생 얘기가 영화 한편으로는 부족하지, 내가 좋은 이야기 거리 줄테니까 들어봐.

내가 영화를 한다. 글을 쓴다고 하면 으레 아저씨들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늘어 놓곤 하는지라 너털 웃으며 네네 하고 앉았는데 아저씨는 왜 혼자 다니냐고 묻는다. 이제 불편함을 넘어 슬슬 겁이나기 시작한다.

나는 혼자 온 것이 아니고 곧 친구들을 만날 건데 어쩌고 저쩌고 뭐라뭐라 둘러대고 있었는데, 
운전을 하던 아저씨가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뒷자리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다급하게 뒤척이다가 점퍼 밑에 있던 묵직한 무언가를 집어 올리는데 

아뿔싸
아저씨가 집어든 것은 
어디 하계 올림픽 사격 경기에서 선수들이 엎드려 쏴 할때나 봤던  
 '공기소총' 이였다!

아무 것도 없는 
이 황야에서 
총을 든
말 많은 아저씨와 
단 둘이 
1톤 트럭 앞좌석에 앉아 있다니 

최악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이다! 
공포영화가 시작될 위기에 빠진 나는 긴장하며 온 정신을 총구에 집중하는데
아저씨는 재빠르게 창문을 열어 총구를 앞에 보이는 덤불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에이구! 놓쳤네.

내가 얼이빠져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아저씨는 총구를 계속 창밖으로 겨눈채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 다시 차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꿩고기! 꿩고기 먹어 봤어?
-..예? 아니요. 못 먹어 봤는데요.
-꿩고기가 기가 막히다니까. 여기서 꿩이 잘 잡혀. 그 쪽 잘 보다가 꿩 나타나면 나한테 꼭 알려줘.
-아, 네.

아저씨는 찻길의 사이드로 주욱 지평선 까지 늘어선 덤불에 주의를 집중하며 꿩을 맛있게 먹는 수십가지 방법에 대해 늘어 놓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 안가 황야의 끝이 보였고 해안도로로 들어서면서 아저씨는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며 총을 다시 뒷자리에 집어 넣었다. 

해안 도로를 달리며 아저씨는 또 친구들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고 이쯤 되니 나는 뭔가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곧 남편이 제주도에 올꺼고, 저녁때 A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며 유부녀 코스프레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그러면 셋이 같이 놀면 되겠네! 하면서 진짜로 기뻐하며 꼭 연락하라며 차에서 내리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셨다. 

수고스럽게 A지점 까지 나를 데려다 주신 그 아저씨는 그러니까 조금은 외로운,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기분이 좀 들뜬 순박한 분이였던 것 같다. 

나는 해안도로를 조금 걷다가 유명하다는 전복죽 맛집에 가서 죽을 먹고 냠냠 원기를 회복하고는 버스를 탔다.

그렇게 꿩잡이 이야기는 끝이 나는데, 별일은 아니였지만, 아저씨가 총을 꺼내던 -내게는 아주아주 길게 느껴졌던- 그 2-3초의 순간이, 지나고 나니 진짜 우스운 것 같아서 언젠가는 꼭 적어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벌써 2년하고도 몇달이 지났다.

그리고 다음 날, 공항에서 달려온 친구의 렌터카가 월정리 해변으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아마도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연말과 연초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이후, 2014년은 여러모로 내 인생에서 최악의 한 해 였고, 그에게도 그랬다.
사적인일 뿐 아니라, 일 적으로도 복잡하게 엮여 있던 우리는 이 모든 문제가 서로 상대방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일년이 못되서 같은 이유로 또 헤어졌다. 또 만난다고 해도 언제라도 같은 이유로 헤어졌을 것이다. 

이제는 얼굴을 보지 않은지 벌써 일년하고도 몇달이 지나갔는데 그 친구한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니 문득 꿩잡이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그에게 꿩아저씨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유는 글쎄, 다른 할 얘기가 너무너무 많았으니까.

헤어질 당시 나는 너무 지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건 진짜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죽을만큼 아프지는 않았는데, 
일년 쯤 됐을때, 그러니까 3개월 째 중국을 여행하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지나, 생빼쩨르부르크에 왔을때 갑자기 미친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죄와벌에서 노파를 죽이고 난 라스꼴리니코프 처럼 정신이 나간 채 냅스키 대로와 센나야 광장을 방황 했다.   
 
왜 그제야 아팠는지는 아직도 확실히는 모르겠다. 

무튼, 이제는 정말로 정리를 하기 위해 몇 문장 적었다.  
행복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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