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스탠딩 코미디언 2016/12/06 21:23 by 한멍멍




넷플릭스가 들어온 이후, 한국에서는 잘 접해보지 못하던 컨텐츠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나에게 단연 쇼킹한 것은 스탠딩 코미디였다.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광대가 되고 싶어했다.
남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 하는 것을 좋아했고 로커가 되기 위해 기타를 배웠고, 베이스를 치고 노래를 하며 스물일곱살에 죽어 버리겠다고 했지만, 노래방이나 수업시간에 시간 떼우기 용으로 봐줄 만한 고만고만한 실력 이상은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도 노래가 하고 싶어서 학교 축제 때마다, 
인문대 앞에서 벌이는 가요제 같은데를 나가곤 했지만 나는 번번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매번 입상을 했던, 지금은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된 한 선배가 "지혜야 너는 그래도 진짜 꼭 나오더라?" 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무용수가 되고 싶었다.
나는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안무가 중 하나인 권 모양이 인정한 '창의적 막춤러(?)' 이지만 
남의 춤을 모사하는 신체적 능력은 정말 저질이였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럽 여행을 다닐때 광장에서 디아보로 등으로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을 보고 묘기 장비들을 사 모았다.
대학로나 학교 중도 앞 같은데서 혼자 묘기를 부리고 사람들이 '올~' 하고 반응해 주는 것이 좋았다.
후배들한테는 중도 앞에서 묘기 부리는 이상한 누나로 통했지만. 뭐.
그런데 이걸로 먹고 살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는 학교 앰티 같은데서 한번 너무 관심 종 취급을 당한 이후, 그만 뒀다. 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 것도 맞다.


배우가 되고 싶었다.
연극영화과를 나왔기에 연기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서 연극과 애들이랑 레퍼토리 공연도 해보았지만 심각한 연기를 할때도 내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시질 않았다. 최형인 선생님 수업 시간이였는데, 선생님께서는 내가 슬픈 독백 연기를 하는 것을 보시고 꾸물꾸물 입을 여셨다. "지혜야 너는 잘하는 거 많은 거 같은데 왜 굳이 연기를 하려고 하니?" 

연기는 노래 보다도, 춤보다도 재능이 없었다. 
나름 분석 해본 결과 무대에서 노래나 춤을 출 때는 그냥 '나'를 하면 되는데, 
연기는 '다른 사람' 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남이 되는 재능이 0에 수렴 한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배우의 꿈도 접었다. 

다행히 자기 객관화에 탁월한 나는 재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을 걸고 끊임없이 노력하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 슬픈 예술가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스물스물 무대 밑으로, 카메라 뒤로, 노트북 앞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런데 나이 서른넷이 되어서, 아지즈 안사리의 쇼를 보고서야
실은 내가 스탠딩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그런데 한국엔 딱 이런 직업이 없구나. (쩝)

우습지만 그래서 내가 요즘 먹고 살기 위해 하고 있는 선생일이 잘 맞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강단에 선다는 것은 일종의 스탠딩 코미디 이므로.


암튼 시나리오도 열심히 쓰고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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